Friday, April 28, 2006
이산가족 상봉 웹사이트 운영 최창준씨 '북에 남은 가족들도 인터넷 볼 날 오겠죠'
독학으로 배워 6년전 개설, 애타는 사연 300여명 게재
올해 75세의 최창준씨는 틈틈히 배운 실력으로 웹사이트를 손수 제작해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들의 아픈 사연을 동영상에 담았다. <김상진 기자>
독학으로 어깨 넘어 컴퓨터를 익힌 최창준(75)씨.
6년 전인 2000년부터 부터 자신이 직접 제작한 웹사이 (kwebtv.net)에 미주 한인 이산가족들의 명단과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자신 경기도 개성 출신의 이산가족으로서 북한에 그리운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가족상봉에 조그만 힘을 보태고 싶어서였다.
"전쟁통에 홀로 개성에 남은 작은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아마 90이 넘으셨을 것입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잖아요. 혹시라도 우리 이산가족들의 명단을 북한 당국에서 본다면 가족 찾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웹사이트를 만들게 된 거죠."
그러나 이산가족 명단 수록 작업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부시 행정부 들어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에 사는 가족들을 찾으려다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이산가족들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란다.
최씨가 웹사이트에 한두명씩 올리기 시작한 이산가족 명단은 6년 만에 300여명을 넘어섰다. 이 중 이무호(76.평남) 임만화(75.평북) 이순애(71.경기) 구원회(77.경기) 허순옥(83.평북)씨 등 5명의 가족 찾기 사연은 동영상으로 제작해 놓았다.
"동영상 한편이 이산가족 명단 100명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마침 올해들어 대북구호기관인 유진벨 재단이 미주 한인 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을 추진하기 위해 '샘소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최씨는 반가운 마음에 유진벨 재단에 이메일을 보냈고 재단은 즉각 그의 도움을 간곡하게 요청해 왔다.
그의 주선으로 동영상의 주인공인 한인 이산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샘소리 프로젝트의 활동상과 함께 지난 25일 KCET와 27일 폭스 TV의 전파를 타고 미 주류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사실 최씨는 전직 언론인이다.
6.25 때 월남해 공병장교로 복무했고 전역후에는 유엔군 사령부의 사진기자로 7년간 일했다. 월남전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전선을 누볐다. 지난 1976년 도미한 그는 84년 샌프란시스코에 KBC TV를 설립 미주 한인방송 사상 최초로 매일 방송시대를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직업은 아파트 매니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비롯해 5개 아파트를 관리한다. 그는 또 정식 면허를 갖춘 최면요법사이자 재향군인회 고문 미수복 경기도민회 회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최씨가 제작해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는 관음사 홈페이지 이북오도민연합회 웹사이트 웹매스터 등 10여개가 넘는다. 틈틈히 무거운 방송용 비디오 카메라를 둘러메고 한인타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장을 찾아 행사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온다. 그가 운영하는 각종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려니 힘이 벅차네요. 하지만 70~80대 연령에 접어든 한인 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사안입니다. 샘소리 프로젝트가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로서 최선을 다하렵니다."
노세희 기자
신문발행일 :2006. 05. 04
수정시간 :2006. 5. 3 20: 50
http://www.joongangusa.com/asp/article.asp?sv=la&src=metr&cont=metr50&typ=1&aid=20060503190108200250


